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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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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광기와 폐허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스승이 연대와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세대에게 “무엇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기억입니다.” _1986년 엘리 위젤의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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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2016)이 생전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 엘리 위젤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이나 인권 문제뿐 아니라 기억, 믿음과 의심, 광기와 저항, 말과 글을 넘어서는 예술 같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떻게 하면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할 수 있을지 학생들과 자주 이야기했다. 

     

    저자인 아리엘 버거는 15세에 처음 엘리 위젤을 만났고, 20대를 엘리 위젤의 학생으로 보냈으며, 30대를 엘리 위젤의 조교로 일한 인물로, 25년 동안 이어진 만남의 기록과 5년 동안의 강의 필기 등을 토대로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의 열기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엘리 위젤의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때로는 위트 넘치는 수업은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엘리 위젤의 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전사 같은 활동가가 되거나 저항자나 성자가 될 필요는 없다.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을 통해서 우리는 힘도 영향력도 없이 외면당하고, 차별과 배제 속에서 위기에 처한 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쓸 때 비로소 인류애가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울 수 있다.​ 

  • 엘리 위젤 Elie Wiesel

    엘리 위젤 Elie Wiesel

    • 소개

      1928-2016.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 작가, 교수, 인권 활동가, 홀로코스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3월, 헝가리를 점령한 독일의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하여 가족들과 함께 게토로 이주했다가 다시 그해 5월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이때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 중 90%가 사망했으며,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세 명도 살해되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가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져 가스실에서 죽게 될 운명이었으나, 1945년 4월 미군에 의해 부헨발트 수용소가 해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해방 직전에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그의 왼팔에는 수감자 번호 A-7713이 문신으로 새겨졌다. 종전 후에는 프랑스의 고아원으로 보내진 뒤 1948년 소르본 대학교에 입학하여 문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전쟁 후 10여 년간 홀로코스트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했으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설득으로 1958년에 회고록 《밤La Nuit》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밤》은 1960년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간된 후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196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1976년부터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세계 각지의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내 메리언과 함께 ‘인류를 위한 엘리 위젤 재단’을 설립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 후로도 남아프리카, 니카라과, 코소보, 수단 등지에서 벌어진 폭력과 집단 학살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등 ‘강력한 인권 옹호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관 설립을 주도하고, 뉴욕 인권 재단의 창립 이사로 일하면서 전 세계 인권 증진을 위해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유대인”이라고 표현했다. 평소에도 “나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했던 그는 학생들과 대화하고 가르치는 일을 가장 좋아했으며, 2011년에 은퇴할 때까지 40년 가까이 보스턴 대학교에서 교편을 놓지 않았다. 보스턴 대학은 그를 기리기 위해 ‘엘리 위젤 유대인 연구 센터’를 설립했다. 2016년 7월 2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 독자들에게

    머리말

     

    1 기억

    2 다름

    3 믿음과 불신

    4 광기와 반항

    5 행동주의

    6 말과 글을 넘어서

    7 목격자

     

    맺음말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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