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직지』펴낸 김진명 "더 일찍 썼어야 했는데 후회된다"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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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작가가 '직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다룬 장편소설『직지』를 펴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새 장편소설『직지』(전 2권, 쌤엔파커스)를 펴낸 김진명 작가는 집필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23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 작가는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을 비롯한 한글, 팔만대장경, 반도체 같은 것들은 지식과 정보를 기록하고 전파하는 장치인데 우리가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주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설명했다. 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둘러싼 중세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1377년에 인쇄된 직지는 고려 말 승려 백운이 선불교에서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으로, 1455년에 인쇄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있다. 소설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유럽의 발명품이 아니라, 직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주인공은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인 김기연이다. 그는 베테랑 형사조차 충격에 빠뜨린 기괴한 살인현장을 취재하게 된다. 피살자는 고려대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며 직지를 연구하던 전형우 교수.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김기연은 직지의 진실에 다가서며, 사건을 파헤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김 작가는 과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등의 작품에서 기자를 중요 인물로 등장시키곤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작가는 "나는 주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작품을 쓰는데 그런 영역에 자연스럽게 개입해 문제를 캘 수 있는 사람은 기자나 교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처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썼을 때는 사람들이 다들 나를 기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기자 출신인 김훈 같은 작가는 (기자가 등장하는 작품이 아닌) 정통 문학을 쓰더라"며 웃었다. 소설에는 또 다른 여자 주인공도 등장한다. 15세기 직지가 유럽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은수'라는 인물이다. 그는 금속활자라는 문화 전파의 매개체이자 전달자이다. 은수가 유럽으로 건너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에 영향을 미치게 된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두 여성을 주요 인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김 작가는 "의식적인 설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남성 위주의 소설만 써왔는데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여자 주인공을 내세웠다"며 "최근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증대되고, 남성 못지않게 사회·역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현상을 소설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진명 작가. 그는 "'직지'가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상상을 미리 하지 못한 게 부끄럽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인터뷰 내내 그는 이번 소설이 "개연성이 있는 '합리적 허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완전히 근거가 없는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분석이나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제로 과거 '타임지' 등에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와 직지의 제조법이 유사하다는 과학적 분석에 대한 기사가 발표된 적 있다. 하지만 유럽에선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책을 쓰면서 직지의 위대함에 대해 놀라운 것들이 너무 많았고, 직지가 너무 세상에 묻혀 있었구나"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직지에 대한 소설을 너무 늦게 썼다고 후회했다. "직지가 구텐베르크보다 빠르게 나왔다면 혹시 직지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미리 했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나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역사적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3일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한 소설가 김진명 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어 "내가 을지문덕, 고구려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며 "소설 등을 통해서 우리에게 부족한 주체성을 세우는 것이 내가 글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주체성을 갖기 위해선 "남이 인정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적극적으로 찾아서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남다른 애국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자 "우리가 애국심을 갖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니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올바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 가족과 이웃을 염려하고 그러다 보면 사회, 나라를 걱정하게 된다"며 "어떻게 하면 괜찮은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오히려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답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중 전쟁』 『제3의 시나리오』 『글자전쟁』 등 굵직한 소설을 쏟아내고 있는 그는 벌써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내년 출간이 목표인 차기작은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김 작가는 "매번 선거가 치러지면 당시 사건이나 급류에 휩쓸려서 수준 낮은 선거가 이뤄지곤 한다"며 "현대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데, 선거야말로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평가할 중요한 기회다. 선거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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